갑과 을의 나라
이 세상은 슈퍼을(乙)을 아래로 둔 슈퍼갑(甲)의 세상이다.
비행기에서 추태를 부린 ‘라면상무’, 대리점주에게 안하무인격인 태도를 보인 한 유제품업체의 ‘욕설팀장’, 주차문제로 호텔 지배인에게 폭언과 폭행을 행사한 ‘빵회장’ 등은 전형적인 슈퍼갑이다.
슈퍼갑은 ‘너 아니어도 사람은 많으니깐’이라며 을에게 부당한 계약과 대우를 한다. 을은 자신이 받는 대우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약해지’를 당할까 노심초사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러운 을을 아래로 둔 막강한 갑의 세상’이다.
1971년 스탠퍼드대학교의 ‘감옥 실험’은 오늘날 갑을관계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 대학의 심리학 교수 필립 짐바르도는 대학생 24명을 선발해 2주 동안 각기 죄수와 교도관 역할을 맡도록 했다. 이들 대학생들은 미국과 캐나다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좋은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다.
짐바르도 교수는 실험을 위해 대학 건물 지하를 감옥처럼 꾸미고 학생들로 하여금 실제 감옥 같은 생활을 하게 했다. 이들은 자기가 맡은 역할에 빠르게 적응했다. ‘갑’인 교도관은 (실제로는 아무 잘못이 없는) ‘을’인 죄수를 정당한 이유도 없이 괴롭혔다. 교도관들은 죄수들이 그들의 변기통을 비울 수 없도록 했으며, 매트리스를 빼앗아 콘크리트 위에서 재우는 등 벌을 주기도 했다. 심지어 몇몇 죄수들에게 벌거벗은 채 다니도록 강요하는 등 갖가지 성적 모욕을 줬다. 결국 14일로 계획됐던 실험은 6일 만에 끝나고 말았다.
사람은 누구나 막강한 힘을 가진 갑의 위치에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은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잔혹한 행위를 을에게 행사한다.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또는 나타내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 갑과 을의 나라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갑일까, 을일까. 인류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절대적인 갑이다. 그러나 ‘특별한 갑’이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4~6)
하나님께서는 막강한 힘과 권력을 가진 갑이지만 그 힘과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죄인인 을을 위해 고난과 희생의 길을 걸으셨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내놓기까지 하셨다. 절대적인 갑이, 절대적인 을을 위해서 말이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나라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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