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2일 목요일

오벨리스크 태양을 훔치다.....




 

 오벨리스크  

태양을 훔치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 터키 그리고 이스라엘. 이곳에는 사각 기둥 모양의 오벨리스크가 있다. 이집트의 신전을 지키고 있어야 할 것이 왜 낯선 이국땅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이국땅의 상징물인 양 말이다.
 이집트에 있던 오벨리스크를 처음으로 옮긴 사람은 로마의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다. 그것은 엄연한 약탈이었지만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죽은 상황에서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로마 황제가 이집트 파라오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집트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옥타비아누스는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라(Ra)의 신전을 지키던 오벨리스크를 굳이 로마까지 가져와 해시계의 중심 기둥으로 삼았고 이후 황제들도 조직적으로 오벨리스크를 로마로 가져갔다. 그들은 전차 경주장이나 신전 앞 광장을 이것들로 장식하는 데 열정을 쏟았다.

4세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자리잡으면서 오벨리스크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는 듯했지만, 이내 그들의 손에 이끌려 부활됐다. 로마 교황들이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의 상징이자 로마 황제의 권위를 상징했던 오벨리스크를 교회 앞 광장에 세웠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한다(?)는 의미로 십자가와 성광을 오벨리스크 꼭대기에 붙인 채 말이다.

이로 인해 오벨리스크에 대한 관심은 서방 열강들로 확대됐다. 약탈한 오벨리스크를 통해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명예와 부를 함께 손아귀에 넘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놀랍게도 이런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일부 서방국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서구열강은 왜 이 비석에 집착했는가? 그것은 식민지 쟁탈에서 성공했다는 자국의 지배력을 과시하기 위한 동기에서였다. 그리고 태양신의 상징물인 만큼 승리의 영광을 나타내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서구선교 역사에 3G시대가 있었다. 정복자의 영광(Glory), 식민지에서 수탈한 황금(Gold), 그리고 하나님(God)을 한 그릇에 담고자 했다. (2005년 4월 20일자 국민일보, ‘오벨리스크의 눈물’ 제하의 기사)

오벨리스크가 없는 메트로폴리탄 주민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로마에 오벨리스크가 있었고, 콘스탄티노플에도 있었다. 파리는 이미 하나 가졌고 런던도 최근에 하나 가졌다. 만약 뉴욕에 오벨리스크가 없다면 다른 모든 큰 도시들은 뉴욕을 우습게 볼 것이다. 그들은 뉴욕이 오벨리스크를 가질 때까지 결코 당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떠들어댈 것이다. (1881년자 뉴욕 헤럴드, 이집트 이스마일 총독이 미국에 오벨리스크를 선물하기 전)



현재 오벨리스크는 로마에 13개를 포함하여 이탈리아에 무려 16개가 있으며 영국에 3개, 프랑스에 2개 그리고 터키와 미국, 이스라엘에 각 1개씩 있다. 이집트에 남아 있는 수(6개)보다 훨씬 많은 수이다. 특히 오벨리스크의 약탈을 주도했던 장본인인 만큼 로마의 비율이 두드러진다. 대부분 로마 가톨릭 성당 앞에서 세워진 것들이다.

가톨릭은 오벨리스크가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한다고 얘기하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굳이 사라진(?) 종교의 유물을 세우면서까지 그 승리를 자축했어야 했을까. 이는 모든 종교를 포용하겠다는 가톨릭의 이념과도 맞지 않는다. 더욱이 성경에서 오벨리스크는 깨뜨려 없애야만 하는 우상이다. 하나님의 역사에서 승리란 우상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제거하는 것이다.

무리가 왕의 앞에서 바알들의 단을 훼파하였으며 왕이 또 그 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거기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 위에 뿌리고 (역대하 34:4)

그가 또 애굽(이집트) 땅 벧세메스의 주상(柱狀)들을 깨뜨리고 애굽 신들의 집을 불사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예레미야 43:13)

로마 가톨릭은 하나님께서 추구했던 승리의 방식과 정반대의 방식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한다는 십자가와 성광을 오벨리스크 위에 세움으로써 그들의 행위를 합리화시켰다. 과연 오벨리스크는 그들의 말처럼 십자가와 성광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대상이었을까.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의 태양신 신앙을 상징하는 사각뿔 형태의 석상 ‘벤벤석’에서 유래됐다. 이집트 신화에서 벤벤은 태초의 물 누(Nu)에서 솟아오른 언덕이다. 이 위에 태양신(아침: 케프리, 낮: 라, 저녁: 아툼)이 내려와 앉았다고 해서 벤벤과 태양신을 동격으로 여겼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그 형태를 본떠 만든 벤벤석을 태초의 태양빛이 가장 먼저 닿은 장소, 성스러운 바위로 믿었다. 이후 태양광선처럼 길쭉한 사각형 기둥이 더해져 오늘날의 오벨리스크 형태를 갖추게 됐다.

이집트 후기 왕조에 이르러 벤벤석 신화는 오시리스의 남근 신화와 합쳐졌다. 태양신은 파라오를 보호하고 왕권을 상징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태양신에 대한 숭배의식은 이처럼 더욱 강화되었다.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의 대표적인 태양신 숭배물이다. 그것은 태양신의 구현을 염원하는 자들의 가장 극적인 표현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태양신 상징물을 굴복시키겠다고 덧붙인 십자가와 성광은 무엇일까. 태양신을 타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십자가와 성광 역시 타파해야 할 우상에 불과하다. 십자가는 교회의 상징이 되기 전부터 태양신의 상징이었으며 방사형으로 빛을 내뿜는 태양 형상의 성광(聖光) 역시 그 자체로 태양을 의미한다. 결국 태양신 숭배물인 오벨리스크에 태양신 숭배물인 십자가와 성광을 장식한 꼴이다.

로마 가톨릭이 세운 오벨리스크, 그것은 결코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하지 않는다. 본래 이집트인들의 태양신 숭배물인 것처럼, 지금도 태양신 숭배물이다. 다만 주인이 바뀌었을 뿐이다.

바뀌어 버린 하나님과 목사의 위치..............-하나님의교회

--------------------------------------------------------------------------------------------------------------------------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하나님의교회
새언약 생명의 진리를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세상에 교회는 많지만 새언약 생명의 진리를 지키고 전하는 교회는 하나님의교회 뿐입니다.







바뀌어 버린 하나님과 목사의 위치






하나님과 목사의 위치가 바뀌었다.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됐단 말이다. 주인과 손님이 뒤바뀌었고, 중요한 것과 부수적인 것의 순서가 바뀌었다. 필자가 다녔던 기성교회 얘기다. 또한 작금의 교회 현실이 이러하여 답답한 심정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신자들의 최종 목적인 구원도, 영혼을 위한 교훈도 예수님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는 예수님을 으뜸으로 여겨야 한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필자가 다녔던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 아니었다, 목사였다. 목사는 믿음만을 강조했고 더불어 주일(일요일예배)을 강조했다. 그날(일요일예배)이 예수님의 날이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날이라고 했다.


필자는 지금에 와서야 그 목사에게 묻고 싶다.
‘일요일예배를 지키면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고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습니까? 성경을 통해 예수님은 일요일예배의 주인이란 주장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예수님을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강조한다. 일요일예배를 강조하는 목사의 말과 다르게 말이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마태복음 12:8, 누가복음 6:5)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고 했는가.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수많은 교회들이 ‘주여 주여’ 하며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요일예배를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혹 일요일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은 이해해주실 거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지, 믿음만 있으면 날짜는 상관없다고 목사가 말했는가. 그렇다면 그 목사는 믿어서는 안 된다. 본인의 위치와 하나님의 위치를 심하게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주인 되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이다.

혹 아직도 목사 자신의 위치를 하나님의 위치와 바꿔치기 한 사람을 따르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말을 더 강조하는 교회에서 구원을 기대하는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자 한다면 한낱 사람인 목사의 말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과 목사의 위치가 바뀌었다.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됐단 말이다. 주인과 손님이 뒤바뀌었고, 중요한 것과 부수적인 것의 순서가 바뀌었다. 필자가 다녔던 기성교회 얘기다. 또한 작금의 교회 현실이 이러하여 답답한 심정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신자들의 최종 목적인 구원도, 영혼을 위한 교훈도 예수님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는 예수님을 으뜸으로 여겨야 한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필자가 다녔던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 아니었다, 목사였다. 목사는 믿음만을 강조했고 더불어 주일(일요일예배)을 강조했다. 그날(일요일예배)이 예수님의 날이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날이라고 했다.


필자는 지금에 와서야 그 목사에게 묻고 싶다.
‘일요일예배를 지키면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고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습니까? 성경을 통해 예수님은 일요일예배의 주인이란 주장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예수님을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강조한다. 일요일예배를 강조하는 목사의 말과 다르게 말이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마태복음 12:8, 누가복음 6:5)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고 했는가.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수많은 교회들이 ‘주여 주여’ 하며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요일예배를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혹 일요일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은 이해해주실 거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지, 믿음만 있으면 날짜는 상관없다고 목사가 말했는가. 그렇다면 그 목사는 믿어서는 안 된다. 본인의 위치와 하나님의 위치를 심하게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주인 되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이다.

혹 아직도 목사 자신의 위치를 하나님의 위치와 바꿔치기 한 사람을 따르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말을 더 강조하는 교회에서 구원을 기대하는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자 한다면 한낱 사람인 목사의 말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다.

성경을 중심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을수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지키고 전하는 하나님의교회 로 초대합니다.

2013년 9월 11일 수요일

약점을 강점으로...

 


 

약점을 강점으로


바다의 최고 포식자 상어는,물고기로서는 매우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뜨고 가라앉는 것을 조절하는 공기주머니 즉 부레와,아가미 근육이 없다는 것입니다.
상어는 부레 대신 몸 전체에서 4분의 1을 차지하는 큰 간을 가지고 있는데,지방질로 이루어진 이 간이 물보다 가벼워 몸이 물에 뜨는 것을 도와줍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라 물에 가라앉는 것을 막으려면 쉼 없이 몸을 움직여야만 합니다. 게다가 호흡에 필요한 아가미 근육이 없다 보니,온몸을 움직여 산소 흡수를 해야 하므로 잠시도 헤엄 치기를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상어가 부레와 아가미 근육이 없이도 바닷속 어디든 민첩하게 이동하고 먹이를 재빨리 사냥 할수 있는 것은,가라앉지 않고 호흡을 하기 위해 몸부림을 하느라 지느러미가 강하게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약점이,바다의 제왕으로 군림할 수있게 한강점이 된 셈입니다.
믿음 생활에서 내게 부족하게 여겨지는 것들로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내 영혼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영혼의 운동을 꾸준히 하고,기도로써 영혼의 호흡을 멈추지 않는다면 말이지요,내게 부족하고 약한 것이,영혼을 쉼 없이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힘입니다.

하나님의뜻 과 황제의 어명 어떤것이 중요한가? .하나님의교회

온세계가 주목하는 하나님의교회 오늘남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그중 하나님의교회는 특별합니다. 성경을 중심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안식일을 지키며 유월절로 시작 하여 하나님의절기를 모두 지킵니다. 그리고 성경의 예언따라 이 땅에 오신 어머니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유일의 교회입니다. 초대합니다. 하나님의교회로~

하나님의뜻 과 황제의 어명

어떤것이 중요한가?

 
 


나더러 주여 자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아무리 초보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십계명이 무엇인지 정도는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십계명 중 4번째 계명이 바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인데,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는 안식일에 해당하는 일곱째 날 토요일 대신에 첫째 날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면서 심지어 매일 매일이 안식일이요 일요일이 일곱째 날이라는 억지주장과 궤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2천 년 전 예수님과 제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사도들과 성도들은 갖은 박해와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로마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에 결코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안식일을 성수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의 순수성을 유린당하지 않기 위해 험난한 산중 사막으로 피해 다니면서 그들의 숭고한 신앙심을 지켜왔다. 그러나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을 따르는 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안식일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일요일을 성수하며 로마 황제로부터 상당한 권력을 부여 받았다.

우리는 누구의 명령을 따라야 할까. 천국을 목표로 누가 뭐라고 하든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황제의 어명에 굴복하여 일요일마다 주일성수 하느라고 헛된 수고를 계속할 것인가.

아직도 주일성수를 외치던 한 권력자의 망령의 명령대로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가. 아니면 인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과 통합을 수없이 반복하는 줏대없는 교단과 대형교회의 위세에 눌려서 식물인간처럼 눈치신앙으로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는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미지근한 신앙이라면 차리라 오염된 교회를 떠나서 진리를 찾아나서는 가나안교인이 더 낫지 않을까.

이후에는 도대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신앙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하나님의 뜻대로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

2013년 9월 7일 토요일

왜 두번째 오실까????????????????????/하나님의교회

2000년 전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새언약 생명의 진리는 초대교회이후 안식일,유월절 외 모든 새언약 절기가 없어져 버렸습니니다. 새언약 없이는 구원도 없기에 예수님께서는 다시한번 이땅에 육체로 오셔서 사라져 버린 새언약을 회복시켜 주실것을 성경은 예언합니다.그예언은 오늘날 실상이 되어 사라진 새언약은 그리스도 안상홍님으로   부터 회복되었습니다.하나님의교회 가 유일하게 새언약을 지키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교회 로 오셔서 생명의 진리   새언약을 알고 지키는 축복 받으세요

--------------------------------------------------------------------------------------------------------------------------


왜 두번째 오실까?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구원자다. 인류는 왜 구원자가 필요한지 또 인류에게 닥친 위기는 무엇이기에 구원자가 등장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기다리는 이 시대의 구원자는 과연 누구인지 알아보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이것이다. 바로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함이다. 지구상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명이 있다. 굳이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다고 하니 예수님께서 주려고 하는 ‘생명’은 무엇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63)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육신의 수한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처럼 무익한 육신의 목숨이 아닌 영원히 사는 영혼의 생명, 즉 ‘영생’을 주고 싶어 하신 것이다. 유한한 삶을 생명의 전부로 여기고 살아가는 인류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인류는 왜 영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 해답은 창조의 역사가 수록된 창세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하나님께서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그곳에 살게 하셨다. 모든 것을 다스리며 자유를 만끽하도록 하셨다. 단 하나, 바로 선악과만큼은 먹지 말라는 금령을 내렸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단언하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뱀의 꼬임으로 선악과를 먹었다. 하나님의 금령을 어긴 결과는 인류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사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어도 다시 살 수 있는 길은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세기 3:22)

그 방법은 바로 생명과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라 할지라도 생명과를 먹는다면 영생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 3:24)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은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가 생명과에 손을 댈 수 없도록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켰다. 결국 생명과의 길은 막혔고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 이후 지금까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그러므로 죽음의 굴레에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손댈 수 없었던 그 생명과를 가지고 말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53)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에덴동산의 생명과라며 주신 것이 당신의 살과 피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에덴동산의 생명과라는 뜻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13:34~35)

창세의 역사 속에 감추어진 것은 무엇인가. 그룹들과 화염검으로 감추어버린 것. 바로 생명과다. 그런데 이것을 ‘비유’라고 하시며 실체는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면 꼭 당신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을까.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 26~28)

인자의 살과 피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된다. 그러니 유월절은 에덴동산의 생명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인류는 구원 얻기 위해 유월절을 지켜야 하며 유월절을 지키는 것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하신 것이다(누가복음 22:15). 이 말씀 속에는 유월절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인류에게 지키라고 예수님께서 전하여 주신 유월절이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폐지되고 말았다. 생명과의 진리인 유월절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인류에게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를 회복하기 위해 재림이라는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두 번째 나타나심, 즉 재림은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는 처음부터 인류를 위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며 단 한 번도 변치 않은 사랑이다. 그러기에 두 번째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재림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에덴동산의 생명과인 ‘유월절’을 회복해야만 한다.

‘왜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셔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그토록 원했던 ‘생명과’를 우리에게 찾아주는 것.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으로 막아놓았던 생명과로 가는 그 길을, 오직 하나님만이 열어주실 수 있는 그 길을, 유월절이라는 진리로 알려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이 땅에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우리는 두번째 오신 재림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나.잃어버린 생명의 진리를 다시 오셔서 찾아주신 그리스도 안상   홍님은 성경이 증거하는 재림그리스도 입니다. 하나님의교회는 그리스도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교회입니다. 하나님의교회로 초대합니다.

2013년 9월 6일 금요일

"내 마음에 따라"------(하나님의교회)

 

생명수 주시는 성령과 신부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 오늘날 성령시대 유일하게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고 전하는 교회입니다.
 
 

 

 

 

 

내 마음에 따라



같은 글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받는 느낌이 다릅니다.누군가는 대강 흝고 마는 단어가 어떤
이들에게는 소중한 깨달음의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종종 입장이 바뀔때도 있습니다.전에는 별다른 감흥 없이 보았던 글이 무한한 감동으로 다가오거나 한때 심금을 울렸던 문장이 상투적인 표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글은 항상 그대로 입니다. 달라지는 것은 보는 이의 마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은 꿀 섞은 과자 같던 만나는 하나님께서 처음 하늘에서 내려주실 때나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나 변함없는 맛이었습니다. 광야 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하는 마음이 꿀맛 나던 양식을 박한 식물로 만들어버린 것뿐이지요(민21장4절)
보면 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놀랍기만 하던 하나님의 말씀이 혹 그렇고 그런 훈계처럼 느껴지시나요?그렇다면 내 마음이 처음과 달라졌다는 표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지나치고 흘려도 상관없는 글로 만들 것인지,영혼을 살찌우는 귀한
자양분으로 삼을 것인지,전적으로 내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초대합니다
하나님의교회로
성경을 통해서 생명의 진리를 꼭 확인하세요~~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온누리에
하나님의교회

반쪽짜리 안식일-/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교회는요~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교회입니다.
하나님의교회는요~하늘어머니 께서 함께하시는 교회입니다.
새언약 생명의 진리를 지키고 전하는 하나님의교회
사랑과 은혜가 가득한 교회

반쪽짜리 안식일


하나님의교회 외에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유태인과 안식교 교인들이다. 이들은 안식일을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지키고 있다. 일몰설에 의거한 것이다. 반면 하나님의교회는 안식일을 토요일 아침을 기점으로 지키고 있다.
이에 하나님의교회를 비방하는 자들은 ‘제대로 안식일을 지키겠다면 유태인들처럼 금요일 저녁부터 지켜야 하는 게 아니냐’며 하나님의교회가 임의로 날짜를 바꾸어 안식일을 지킨다고 비난한다. 그들의 주장처럼 유태인들이 금요일 저녁부터 안식일을 지키기 때문에 그와 같이 행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먼저, 일몰설이 과연 하나님의 가르침에 합당한 주장인지 보자. 일몰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창세기 1장을 근거로 하루의 시작이 ‘저녁’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31)

그들의 주장대로면 하루의 시작은 저녁이고 끝은 아침이다. 저녁부터 아침까지가 하루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낮’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또한 일몰설이 이에 근거한 것이라면 안식일도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아침까지만 지켜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제시한 성경적 근거와는 맞지 않게 안식일을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지키고 있다.

그들은 또 다른 근거로 레위기 24장을 제시한다.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일을 지킬지니라 (레위기 23:32)

이를 근거로 안식일을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지킨다는 얘기다. 하지만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이 안식일이 ‘제칠일 안식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 (레위기 23:23~32)

여기서 7월 1일을 안식일이라고 했다. 그러면 이후 7월 8일이 안식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기록하는가. 9일 저녁부터 안식일을 지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9일 저녁부터 10일 저녁까지 지키라고 한 안식일이, 제칠일 안식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절기에 안식할 것’을 ‘안식일을 지키라’고 표현한 것인데, 그들은 앞뒤 문맥도 살피지 않고 무조건 제칠일 안식일로 해석해 하나님의 가르침을 왜곡한 것이다. 참고로 7월 1일은 나팔절이고 10일은 속죄일이다.

그러므로 레위기 23장을 근거로 제칠일 안식일을 주장하는 것은, 절기의 안식일과 제칠일 안식일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펼치는 어리석은 주장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제칠일 안식일을 언제부터 지키라고 하셨을까.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세기 1:31, 2:1~3)

하나님께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여섯째 날이라고 선포하셨다. 언제 선포하셨는가? 아침이다. 그러면 일곱째 날은 어느 시점부터 시작하겠는가. 이 역시 아침이다. 당연한 말씀이다. 이처럼 안식일은 일곱째 날 아침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금요일 저녁부터 안식일이 시작된다는 일몰설은 성경 가르침과 결코 맞지 않다.

그렇다면 유태인들은 왜 금요일 저녁부터 안식일을 지키는 것일까. 율법을 꿰고 있다 자부하는 그들이 왜 이런 실수를 범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느헤미야 당시의 기록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하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유다 자손에게 예루살렘에서도 팔기로 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 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하고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 때에 내가 명하여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내 종자 두어 사람을 성문마다 세워서 안식일에 아무 짐도 들어 오지 못하게 하매 장사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번 예루살렘성 밖에서 자므로 내가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 후부터는 안식일에 저희가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느헤미야 13:15~21)

구약의 안식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인데, 느헤미야의 기록을 보면 안식일에 장사를 하고 있다. 이에 온전하게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안식일 전날, 성문을 닫는 역사가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금요일 저녁부터 안식일을 준비하는 습관이 이어져 내려왔던 것인데, 문제는 이런 관습이 너무 과하여서 안식일을 예비하는 금요일 저녁마저 안식일로 생각해버린 데 있다. 안식일을 아예 지키지 않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안식일을 애써 지키면서도 사람의 생각이 덧붙여져 왜곡된 안식일을 만들어 지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절기를 지킨다. 유태인과 같은 사람의 관습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따라서 ‘유태인처럼 금요일 저녁부터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은 안식일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주장에 불과하다.